밤의 미학 / 문익환
커튼을 내려 달빛을 거절해라.
밖에서 흘러드는 전등불을 꺼라.
그리고 눈을 감고 가만히 기다려라
방 하나 가득한 어둠이 절로 환해져서
모든 것이 흙빛 원색으로 제 살을 내비치거든
네 몸에서도 모든 매듭을 풀어라.
*출처: 문익환 탄생 100주년 기념 시집 『두 손바닥은 따뜻하다』, 계절, 2018.
*약력: 1918년 만주 출생,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 한신대학교 교수, 성서학자, 남북통일 운동가, 1994년 향년 75세 영면.
시 속의 '밤'은 어두움이자 암울함이지만, '희망의 불빛'일 수도 있을 것이다.
70년대 유신 시절에 놓여 있던 우리의 정치 상황으로 상정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시대 상황과 연결해야만 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자아 탐구 혹은 '나는 누구인가'란 화두에 천착하는 시라 이해해도 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그런 암울한 속에 시 속 화자는 오히려 더 어두운 상황을 만들라고 한다.
"커튼을 내려 달빛을 거절해라. / 밖에서 흘러드는 전등불을 꺼라."가 그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화자는 "눈을 감고 가만히 기다려라"고 말한다.
이는 눈으로만 보려 하지 말고 마음의 눈으로 보라는 말이다.
그렇게 마음의 눈으로 보게 되면 "방 하나 가득한 어둠이 절로 환해"질 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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