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달개비 / 김형미

믈헐다 2023. 6. 29. 04:52

달개비 / 김형미

 

이제 막 머리를 들어올리기 시작한

달개비 마디 속에서 물소리가 들렸을까

무척이나 맑고 잔잔한 고요함이

잔가락도 없이 신비로움을 자아내던 것이

늪지에서 자라는 갈대 속에 든

얇은 청(淸)을 울리는 듯한 그 소리

배꼽 아래로 검지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곳

꺾어지는 마디에서 가지 나오고 잎이 나와

각기 제 소리를 하는 달개비 아홉 대궁에

가만히 입을 포개어보면,

어느 비 오고 바람 부는 하늘 속을

새파라니 길어 올리던 것이

 

*출처: 김형미 시집 오동꽃 피기 전, 시인동네, 2016.

*약력: 1978년 전북 부안 출생, 원광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전북일보 신춘문예,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

 

 

“이제 막 머리를 들어올리기 시작한 / 달개비 마디 속에서 물소리가 들렸을까”

꽃의 의미와 꽃을 피우기 위해 줄기 속 물 흐르는 소리에 집중한다.

그 소리는 “무척이나 맑고 잔잔한 고요함”이요,

“잔가락도 없이 신비로움을 자아내던 것”이다.

“늪지에서 자라는 갈대 속에 든 / 얇은 청(淸)을 울리는 듯한” 맑은 소리이다.

게다가 그 소리는 “배꼽 아래로 검지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곳”이라니

바로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소리이다.

시 속 표현 그대로 달개비는 “꺾어지는 마디에서 가지 나오고 잎이 나”온다.

그 아홉 대궁에 “가만히 입을 포개어보면,”

“어느 비 오고 바람 부는 하늘 속을 / 새파라니 길어 올리던” 소리일 것이리라.

 

*참고

검지손가락은 둘째 손가락인 검지 집게손가락의 비표준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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