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개비 / 김형미
이제 막 머리를 들어올리기 시작한
달개비 마디 속에서 물소리가 들렸을까
무척이나 맑고 잔잔한 고요함이
잔가락도 없이 신비로움을 자아내던 것이
늪지에서 자라는 갈대 속에 든
얇은 청(淸)을 울리는 듯한 그 소리
배꼽 아래로 검지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곳
꺾어지는 마디에서 가지 나오고 잎이 나와
각기 제 소리를 하는 달개비 아홉 대궁에
가만히 입을 포개어보면,
어느 비 오고 바람 부는 하늘 속을
새파라니 길어 올리던 것이
*출처: 김형미 시집 『오동꽃 피기 전』, 시인동네, 2016.
*약력: 1978년 전북 부안 출생, 원광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전북일보 신춘문예,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
“이제 막 머리를 들어올리기 시작한 / 달개비 마디 속에서 물소리가 들렸을까”
꽃의 의미와 꽃을 피우기 위해 줄기 속 물 흐르는 소리에 집중한다.
그 소리는 “무척이나 맑고 잔잔한 고요함”이요,
“잔가락도 없이 신비로움을 자아내던 것”이다.
“늪지에서 자라는 갈대 속에 든 / 얇은 청(淸)을 울리는 듯한” 맑은 소리이다.
게다가 그 소리는 “배꼽 아래로 검지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곳”이라니
바로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소리이다.
시 속 표현 그대로 달개비는 “꺾어지는 마디에서 가지 나오고 잎이 나”온다.
그 아홉 대궁에 “가만히 입을 포개어보면,”
“어느 비 오고 바람 부는 하늘 속을 / 새파라니 길어 올리던” 소리일 것이리라.
*참고
‘검지손가락’은 둘째 손가락인 ‘검지’와 ‘집게손가락’의 비표준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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