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 좋은 날 / 이재무
볕 좋은 날
사랑하는 이의 발톱을 깎아주리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부은 발등을
부드럽게 매만져 주리
갈퀴처럼 거칠어진 발톱을
알뜰, 살뜰하게 깎다가
뜨락에 내리는 햇살에
잠시 잠깐 눈을 주리
발톱을 깎는 동안
말을 아끼리
눈 들어 그대 이마의 그늘을
그윽하게 바라다보리
볕 좋은 날
사랑하는 이의 근심을 깎아주리
*출처: 이재무 시집 『데스밸리에서 죽다』, 천년의시작, 2020.
*약력: 1958년 충남 부여 출생, 한남대 국문학과, 동국대 국문학과 석사과정 수료.
"볕 좋은 날" 아내의 발톱을 깎아주는 풍경은 상상만 하여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아내의 발 앞에 앉아 발톱을 깎기 위해서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으니,
이를 시인은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라 표현한다.
그런 자세는 단순히 자라난 발톱만을 깎는 게 아니다.
바로 그 동안 살아내느라 "부은 발등을 / 부드럽게 매만져 주"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발톱을 깎는 동안 / 말을 아끼리"라 한다.
발을 만지고 발가락 끝의 발톱을 다듬는 데에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