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마리의 연가 / 양향숙
작아도 너무 작아서
눈에 띄지도 않는 계집애가
풀섶에 오도카니 서 있다
들여다보면
얼굴 가득
연하늘빛 웃음을 머금은 채
그 자리 서기까지
종종 걸음으로
얼마나 먼 길을 걸어왔을까
하늘빛 미소 짓기까지
얼마나 오래
구겨진 시간을 문질렀을까
한 송이 꽃이라며
온몸으로 떠받치고 있는 세상이
하늘 향해 열려 있다
*출처: 양향숙 시집 『꽃마리의 연가』, 서정문학, 2019.
*약력: 1959년 전남 나주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 졸업, 서정문학 58기 시 부문 신인상 수상.
시인의 첫 시집인 〈꽃마리의 연가〉의 인사말에 수록된 시이다.
사실 우리는 풀숲을 걸어갈 때 잡초란 생각에 아무렇지도 않게 밟고 지나간다.
그러나 그것들이 하나의 이름을 가진 꽃이라는 걸 안다면 함부로 밟지는 않는다.
행여 내 발에 밟혀 죽지나 않을까 걱정도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것을 이 시에서는 여실히 보여준다.
꽃마리는 “작아도 너무 작아서 / 눈에 띄지도 않는”다며,
이 꽃을 계집애로 인식하고 “풀섶에 오도카니 서 있다”고 표현한다.
아무리 작은 꽃이라도 “들여다보면 / 얼굴 가득 / 연하늘빛 웃음을 머금”고 있단다.
꽃마리가 풀섶 “그 자리 서기까지 / 종종 걸음으로 / 얼마나 먼 길을 걸어왔을까”,
“하늘빛 미소 짓기까지 / 얼마나 오래 / 구겨진 시간을 문질렀을까”라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꽃을 피운 작디작은 연하늘빛 꽃마리가 참 아름답지 않은가.
*참고
‘풀섶’은 ‘풀숲’의 방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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