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 / 류근
이상하지
시깨나 쓴다는 시인들 얼굴을 보면
눈매들이 조금씩 일그러져 있다
잔칫날 울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처럼
심하게 얻어맞으면서도
어떤 이유에서든 이 악물고 버티는 여자처럼
얼굴의 능선이 조금씩 비틀려 있다
아직도 일렬횡대가 아니고선 절대로 사진 찍히는 법 없는
시인들과 어울려 어쩌다 술을 마시면
독립군과 빨치산과 선생과 정치꾼이
실업자가 슬픔이 과거가 영수증이
탁자 하나를 마주한 채 끄덕이고 있는 것 같아
천장에 매달린 전구 알조차 비현실적으로 흔들리고
빨리 어떻게든 사막으로 돌아가
뼈를 말려야 할 것 같다 이게 뭐냐고
물어야 할 것 같다
울어야 할 것 같다
*출처: 류근 시집 『어떻게든 이별』, 문학과지성사, 2016.
*약력: 1966 경북 문경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과 동 대학원 박사과정.
흔히 시인의 눈은 일반인과 달리 순수한 영혼이기에 맑은 눈을 가졌다고 한다.
그렇기에 사물을 꿰뚫어 보기 위해서는 눈매가 일그러져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슬프거나 아프면 울어야 하는데 "이 악물고 버티는 여자처럼"
시인의 "얼굴의 능선이 조금씩 비틀려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또한 "일렬횡대가 아니고선 절대로 사진 찍히는 법 없"다니
뭔가 가슴속에 큰 뜻을 품고 있는 듯하나 실체는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런 시인들의 행태에 큰 자괴감을 느끼며 처절한 자기반성이 엿보이는 시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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