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 / 홍영수
나는 너를 지고 너는 나를 이고
너는 나를 안고 나는 너를 베고
생김새도 크기도 다른 것들이
모둠 살이 하며
담장 하나 이루었다
나보다는 너에게
너에게
나를 맞추니
숭숭한 구멍들 사이로
바람이 배시시 웃으며 길인 듯 스쳐 간다.
돌담을
담으로 지금껏 서 있게 한
사이와 사이의
기둥 같은 숨구멍들
허투루한 틈바구니
열린 마음 하나
담이 되어 서 있다.
*출처: 계간 《시마(詩魔)》 제7호(2021.3.).
*약력: 전남 해남 출생, 명지대학교 영문과 졸업 및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월간〈모던포엠〉으로 등단.
돌담의 돌들은 자신만을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나보다는 너에게 / 너에게 / 나를 맞추니”
그뿐만 아니라 “숭숭한 구멍들 사이로 / 바람이 배시시 웃으며 길인 듯 스쳐” 가니
아무리 강한 태풍이 불어도 웬만해서는 무너지지 않는다.
인간관계에서도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나에게만 맞추길 바라거나 요구한다면 쉽게 무너지고 말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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