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봉숭아 / 구정혜
물처럼 살고자 했던
그 여자
신데렐라처럼 온몸으로 사랑받는
봉선화와는 달리
축축한 그늘에서 산다
언제나 뒤편에 서서
뭇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말없이 바라본다
이제는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조차
멀어져 간다
태풍 영향으로
비가 찔끔거렸는지
물봉숭아 눈이 퉁퉁 부었다
새벽에 난소암 투병하던
옆자리가 비워졌다
*출처: 구정혜 시집 『말하지 않아도』, 시산맥사, 2019.
*약력: 1959년 경북 상주 출생, 2014년 ‘모던포엠’으로 등단, 2022년 향년 64세로 타계.
폐암 4기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 표적치료제까지 받은 시인이다.
이 시에서는 ‘물봉숭아’를 난소암으로 투병하는 여인으로 환치시킨다.
꽃 모양이 언뜻 보면 나팔 같지만 여성의 난소와 그 생김이 비슷할 뿐만 아니라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라는 특성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닐까.
난소암으로 입원한 사람은 바로 “물처럼 살고자 했던 / 그 여자”이다.
아등바등하지 않고 물 흐르듯이 평온한 삶을 살고자 하였으나
병으로 입원하고 수술하고 그리고 투병에 시달렸으니 그랬을 것이다.
“신데렐라처럼 온몸으로 사랑받는 / 봉선화와는” 달리 시인의 삶이 그랬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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