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성희 잘 있거라 / 권석창
자주 가던 소주 집
영수증 달라고 하면
메모지에 술갑 얼마라고 적어준다.
시옷 하나에 개의치 않고
소주처럼 맑게 살던 여자
술값도 싸게 받고 친절하다.
원래 이름이 김성희인데
건강하게 잘 살라고
몸성희라 불렀다.
그 몸성희가 어느 날
가게 문을 닫고 사라져버렸다.
남자를 따라갔다고도 하고
천사가 되어 하늘로 갔다는
소문만 마을에 안개처럼 떠돌았다
어느 하늘 아래 살고 있는지
몸성희 잘 있는지
소주를 마실 때면 가끔
술값을 술갑이라 적던 성희 생각난다.
성희야, 어디에 있더라도
몸성희 잘 있거라.
*출처: 권석창 시집 『쥐뿔의 노래』, 모아드림, 2005.
*약력: 1951년 경북 순흥 출생, 대구대학교대학원 문학 박사.
아호 겸 필명이 ‘서각(鼠角)’으로, 이는 환갑을 지나면서 쥐뿔도 아는 게 없다는 의미.
화자가 자주 가던 소줏집의 주인의 이름이 김성희이다.
영수증을 달라고 하면 메모지에 “술갑 얼마”라고 써주는 여인이다.
‘술값’을 ‘술갑’이라고 “시옷 하나에 개의치 않고 / 소주처럼 맑게 살던 여자”
화자는 그녀에게 “건강하게 잘 살라고 / 몸성희라 불렀다.”
어느 날 소줏집 가게 문이 닫히고 그녀가 사라졌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온갖 억측이 난무하였다.
세월이 흘러 화자는 지금도 “소주를 마실 때면 가끔” 그녀가 생각난다.
그만큼 정이 들어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는 여자일 수도 있다.
특별히 사랑을 나눈 것도 아닌데도 문득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 바로 특별한 사람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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