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몸성희 잘 있거라 / 권석창

믈헐다 2023. 8. 7. 06:07

몸성희 잘 있거라 / 권석창

 

자주 가던 소주 집

영수증 달라고 하면

메모지에 술갑 얼마라고 적어준다.

시옷 하나에 개의치 않고

소주처럼 맑게 살던 여자

술값도 싸게 받고 친절하다.

원래 이름이 김성희인데

건강하게 잘 살라고

몸성희라 불렀다.

그 몸성희가 어느 날

가게 문을 닫고 사라져버렸다.

남자를 따라갔다고도 하고

천사가 되어 하늘로 갔다는

소문만 마을에 안개처럼 떠돌았다

어느 하늘 아래 살고 있는지

몸성희 잘 있는지

소주를 마실 때면 가끔

술값을 술갑이라 적던 성희 생각난다.

성희야, 어디에 있더라도

몸성희 잘 있거라.

 

*출처: 권석창 시집 쥐뿔의 노래, 모아드림, 2005.

*약력: 1951년 경북 순흥 출생, 대구대학교대학원 문학 박사.

           아호 겸 필명이 서각(鼠角)’으로, 이는 환갑을 지나면서 쥐뿔도 아는 게 없다는 의미.

 

 

화자가 자주 가던 소줏집의 주인의 이름이 김성희이다.

영수증을 달라고 하면 메모지에 “술갑 얼마”라고 써주는 여인이다.

‘술값’을 ‘술갑’이라고 “시옷 하나에 개의치 않고 / 소주처럼 맑게 살던 여자”

​화자는 그녀에게 “건강하게 잘 살라고 / 몸성희라 불렀다.”

어느 날 소줏집 가게 문이 닫히고 그녀가 사라졌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온갖 억측이 난무하였다.

세월이 흘러 화자는 지금도 “소주를 마실 때면 가끔” 그녀가 생각난다.

그만큼 정이 들어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는 여자일 수도 있다.

특별히 사랑을 나눈 것도 아닌데도 문득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 바로 특별한 사람이지 않겠는가.

'빛나는세상 > 출석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상의 벤치 / 박정희  (0) 2023.08.09
앉은뱅이꽃 / 이남순  (0) 2023.08.08
다람쥐 합장 / 주용일  (0) 2023.08.05
깽깽이풀 / 신순애  (0) 2023.08.05
종이무덤 / 전윤호  (0) 2023.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