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지상의 벤치 / 박정희

믈헐다 2023. 8. 9. 06:00

지상의 벤치 / 박정희

 

공원 벤치에 앉아

땅콩 껍질을 까 주는 아빠 앞에

다섯 살 아기는 손 내밀기 바쁘다

 

껍데기 없는 땅콩 만들면 안 되나

맛있는 포도도

딱딱한 호도도 알맹이만 만들면 안 되나

 

아이는 말한다

복잡하게 생각할 게 하나도 없다고

 

나뭇가지 위 참새도 만들고

풀밭에 토끼도 만들고

아기도 하나 만들고

복잡할 게 뭐냐고

 

땅콩 껍질 까 주는 아빠 앞에

다섯 살 아이의 주장은 간단하다

 

*출처: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 2019 1월호.

*약력: 함북 길주 출생, 충북 청주에서 성장, 청주여고 졸업, 동국대 영문과 졸업, 서울여자대학교대학원 졸업, 1958 '현대문학'으로 등단.

 

 

“껍데기 없는 땅콩 만들면 안 되나”, “딱딱한 호도도 알맹이만 만들면 안 되나”

인간의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복잡하게 생각할 게 하나도 없다”

바로 “공원 벤치에 앉아 / 땅콩 껍질을 까 주는 아빠”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시제인 “지상의 벤치”에서 ’지상은 다섯 살 아기‘가 살아가는 현실 세상이고,

‘벤치’는 그 아기에게 늘 그늘이 되어주는 아빠를 뜻한다.

그러니 아빠만 있으면 된다는 아기의 주장은 간단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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