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빗소리 / 오세영
한편의 교향악인가?
불어서, 두드려서, 튕겨서 혹은 비벼서
음(音)을 내는 악기들,
가을 밤 비 내리는 소리를 들어보아라.
피아노를 치는 담쟁이 잎새,
실로폰을 두드리는 방울꽃,
바이올린을 켜는 구절초,
트럼펫을 부는 나팔꽃,
북을 울리는 해바라기,
빛이 없는 밤에는 꽃들도 변신해 모두
악기가 된다.
비와 바람과 천둥이 함께 어우르는,
실은 신(神)이 지휘하는 자연의
대 오케스트라 연주(演奏).
낮게 혹은 높게, 작게 혹은 크게
화음(和音)을 이루는 그 아늑한 선율이여.
일상의 소음에 지친 우리를
사르르 잠들게 하는 가을 비
그 빗소리여.
*출처: 오세영 시집 『가을 빗소리』, 천년의시작, 2016.
*약력: 1942년 전남 영광군,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 박사.
소리가 아름답게 들리는 참 예쁜 시이다.
담쟁이 잎새는 피아노를 치고, 방울꽃은 실로폰을 두드린다.
구절초는 바이올린을 켜고, 나팔꽃은 트럼펫을 분다.
해바라기는 북을 울리니, 그 모든 것은 자연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이다.
이렇듯 “화음(和音)을 이루는 그 아늑한 선율이”
“일상의 소음에 지친 우리를 / 사르르 잠들게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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