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빈 그릇 / 장욱

믈헐다 2023. 8. 22. 05:50

빈 그릇 / 장욱

 

​투명한 유리그릇 햇빛 속에 버리어진다

저만 휑허니 떠나가는 것 같지만 그 속에 세월이 있었네 기다림이 있었네

송순 따서 봄 초론 한 숨 푹 재워 놓던, 질경이 새순 따서 질긴 마음 우려내던, 청매실 속 씨 빼내고 신맛 장아찌 담그던

아내의 흰 손마디 곰삭아 내린 그 맑음 옆에는 눈망울 같은 시간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오늘

하루

가네

 

*출처: 장욱 시집 두방리에는 꽃꼬리새가 산다, 천년의시작, 2021.

*약력: 1956년 전북 정읍 출생, 1988 월간문학 시조 등단, 1992 문학사상 시 등단.

 

투명한 유리그릇 속에 햇빛이 버리어지니 저만 휑하니 떠나는 것 같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 오늘 / 하루 / 가네”

아련하지만 그 속에는 세월과 기다림이 있었다며 아쉬움을 달랜다.

하루 한나절이 지나가는 것조차 안타깝게 느끼는 시인은

지금 행복한 순간을 손에 쥐고 싶은 마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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