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그릇 / 장욱
투명한 유리그릇 햇빛 속에 버리어진다
저만 휑허니 떠나가는 것 같지만 그 속에 세월이 있었네 기다림이 있었네
송순 따서 봄 초론 한 숨 푹 재워 놓던, 질경이 새순 따서 질긴 마음 우려내던, 청매실 속 씨 빼내고 신맛 장아찌 담그던
아내의 흰 손마디 곰삭아 내린 그 맑음 옆에는 눈망울 같은 시간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오늘
하루
가네
*출처: 장욱 시집 『두방리에는 꽃꼬리새가 산다』, 천년의시작, 2021.
*약력: 1956년 전북 정읍 출생, 1988년 〈월간문학〉 시조 등단, 1992년 〈문학사상〉 시 등단.
투명한 유리그릇 속에 햇빛이 버리어지니 저만 휑하니 떠나는 것 같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 오늘 / 하루 / 가네”
아련하지만 그 속에는 세월과 기다림이 있었다며 아쉬움을 달랜다.
하루 한나절이 지나가는 것조차 안타깝게 느끼는 시인은
지금 행복한 순간을 손에 쥐고 싶은 마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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