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침(金針) / 박지웅
본디 구름은 침술에 밝아
빗소리만으로도 꽃을 일으키는데
오늘은 흐린 침통에서
햇빛 한 가닥 꺼내들더니
꽃무릇에 금침을 놓는다
무형무통(無形無痛)한 구름의 침술은
대대로 내려오는 향긋한 비방
백회로 들어가 괸 그늘 풀어주는
산 채로 죽은 곳에 이르는 일침
꽃봉오리 하나 달이는데
먼 별과 행성이 눈 맞추고 있다
그 아득한 손길을 지나
바위 한 채 열고 나오는 산꽃 하나
*출처: 박지웅 시집 『나비 가면』, 문학동네, 2021.
*약력: 1969년 부산 출생,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느닷없이 쏟아지는 소낙비를 맞아 온몸이 축축할 때
여름 한 낮의 따가운 햇볕은 그야말로 무형무통의 금침이다.
금방 옷이 마르면서 몸까지 개운하니 말이다.
무릇 꽃들도 그러하리라.
“햇빛 한 가닥” 꺼내 금침으로 꽃을 피운다니 탄성이 절로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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