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과 밤의 끝에서는 / 박준
까닭 없이 손끝이
상하는 날이 이어졌다
책장을 넘기다
손을 베인 미인은
아픈데 가렵다고 말했고
나는 가렵고 아프겠다고 말했다
여름빛에 소홀했으므로
우리들의 얼굴이 검어지고 있었다
어렵게 새벽이 오면
내어주지 않던 서로의 곁을 비집고 들어가
쪽잠에 들기도 했다
*출처: 박준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문학과지성사, 2018.
*약력: 1983년 서울 출생,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과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
“사랑이란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생텍쥐페리'는 그의 소설 <인간의 대지>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 마주보는 것은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에 불과하지만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는 것은 사랑까지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책장을 넘기다 / 손을 베인 미인은 / 아픈데 가렵다고 말했”지만
“나는 가렵고 아프겠다고 말했다”는 건 아픔까지도 알아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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