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금침(金針) / 박지웅

믈헐다 2023. 8. 26. 03:11

금침(金針) / 박지웅

 

본디 구름은 침술에 밝아

빗소리만으로도 꽃을 일으키는데

오늘은 흐린 침통에서

햇빛 한 가닥 꺼내들더니

꽃무릇에 금침을 놓는다

무형무통(無形無痛)한 구름의 침술은

대대로 내려오는 향긋한 비방

백회로 들어가 괸 그늘 풀어주는

산 채로 죽은 곳에 이르는 일침

꽃봉오리 하나 달이는데

먼 별과 행성이 눈 맞추고 있다

그 아득한 손길을 지나

바위 한 채 열고 나오는 산꽃 하나

 

*출처: 박지웅 시집 나비 가면, 문학동네, 2021.

*약력: 1969년 부산 출생,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느닷없이 쏟아지는 소낙비를 맞아 온몸이 축축할 때

여름 한 낮의 따가운 햇볕은 그야말로 무형무통의 금침이다.

금방 옷이 마르면서 몸까지 개운하니 말이다.

무릇 꽃들도 그러하리라.

“햇빛 한 가닥” 꺼내 금침으로 꽃을 피운다니 탄성이 절로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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