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거리다 / 김승희
꿈틀거리다
꿈이 있으면 꿈틀거린다
꿈틀거린다, 라는 말 안에
토마토 어금니를 꽉 깨물고
꿈이라는 말이 의젓하게 먼저 와 있지 않은가
소금 맞은 지렁이같이 꿈틀꿈틀
매미도 껍질을 찢고 꿈틀꿈틀 생살로 나오는데
어느 아픈 날 밤중에
가슴에서 심장이 꿈틀꿈틀할 때도
괜찮아
꿈이 있으니까 꿈틀꿈틀하는 거야
꿈꾸는 것은 아픈 것
토마토 어금니를 꽉 깨물고
꿈틀꿈틀
바닥을 네발로 기어가는 인간의 마지막 마음
*출처: 김승희 시집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 창비, 2021.
*약력: 1952년 전남 광주 출생, 서강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사 ‘꿈틀거리다’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보통은 ‘몸의 한 부분이 구부러지거나 비틀어지며 자꾸 움직이는’ 걸 말하지만
또 다른 뜻은 ‘생각이나 감정 따위가 갑자기 자꾸 일어나는 걸 말한다.
언어유희 같지만 시인은 ‘꿈틀거리다’를 ‘꿈을 틀다’, 즉 ‘꿈꾸다’로 받아들인다.
‘꿈은 “꿈틀꿈틀 / 바닥을 네발로 기어가는 인간의 마지막 마음”이라고 말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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