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림 / 지연
비 그치고
새 소리는 실 한 줄
꽃잎이 열리는 소리는 실 네 줄
이쪽에서 저쪽으로
소리 매듭을 만들며 날아간다
바람이 솔잎 살갗으로 건너올 때
나는 몇 줄로 이 세상에 수를 놓고 있나
아무 색도 없이
방범창에 방울방울
그믐 숨소리로 흔들린다
실패에 감긴 실의 후회는 아무것도 아니리
살아 있는 순간은 아름다움을 내 귀에 꽂은 날이니
구름 솜에 꽂힌 녹슨 바늘이어도 좋다
오늘은 추리닝을 입고 물방울을 바라볼 일
*출처: 지연 시집 『내일은 어떻게 생겼을까』, 실천문학사, 2022.
*약력: 1971년 전북 임실 출생, 2013년 『시산맥』 신인문학상으로 작품 활동.
“구름 솜에 꽂힌 녹슨 바늘이어도 좋다”니
“살아 있는 순간은 아름다움을 내 귀에 꽂은 날”처럼 귀가 솔깃해진다.
고도의 은유로 시인의 심상을 나타낸 시라
설핏 감상하다가는 시제인 ‘엎드림’의 연관성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낮게 엎드리지 않고는 자연의 소리, 시인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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