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어떤 배려 / 서봉교

믈헐다 2023. 10. 4. 00:24

어떤 배려 / 서봉교

 

​이발소 앞 중국집에서

아들은 짜장 난 짬뽕을 먹는데

에어컨 옆 늙은 고무나무

이파리가 다 말라가면서

물 좀 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그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나무의 시선이 거슬려 면을 먹기가 거북하고

매끄럽지 못한 신경전이 계속되는데

벌써 아들은 한 그릇 다 비웠다

나도 대충 짬뽕을 마무리하고

반쯤 남은 물병을 들고 가

화분에 물을 주었다

괜히 주인 눈치 살피며

계산하고 돌아서는데

여주인의 한마디

 

​아저씨 저 나무 물 자주 주면 죽어요.

 

*출처: 서봉교 시집 강물이 물때를 벗는 이유, 달아실, 2023.

*약력: 강원 영월 출생, 2006 조선문학으로 등단.

그냥 아무에게나 들려주듯 너무나 평범한 이야기이다 보니

자칫 시 작법의 의구심에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다.

그러나 행간에 감추어진 뜻은 너무나 깊고 크다.

늙은 고무나무를 통해 목말라하는 작금의 현실을 비꼬며,

식물이든 인간이든 교감을 통해 배려하는 마음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아저씨 저 나무 물 자주 주면 죽어요.”라는 중국집 여주인의 한마디에

화자는 겸연쩍어 멋쩍은 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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