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배려 / 서봉교
이발소 앞 중국집에서
아들은 짜장 난 짬뽕을 먹는데
에어컨 옆 늙은 고무나무
이파리가 다 말라가면서
물 좀 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그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나무의 시선이 거슬려 면을 먹기가 거북하고
매끄럽지 못한 신경전이 계속되는데
벌써 아들은 한 그릇 다 비웠다
나도 대충 짬뽕을 마무리하고
반쯤 남은 물병을 들고 가
화분에 물을 주었다
괜히 주인 눈치 살피며
계산하고 돌아서는데
여주인의 한마디
아저씨 저 나무 물 자주 주면 죽어요.
*출처: 서봉교 시집 『강물이 물때를 벗는 이유』, 달아실, 2023.
*약력: 강원 영월 출생, 2006년 《조선문학》으로 등단.
그냥 아무에게나 들려주듯 너무나 평범한 이야기이다 보니
자칫 시 작법의 의구심에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다.
그러나 행간에 감추어진 뜻은 너무나 깊고 크다.
늙은 고무나무를 통해 목말라하는 작금의 현실을 비꼬며,
식물이든 인간이든 교감을 통해 배려하는 마음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아저씨 저 나무 물 자주 주면 죽어요.”라는 중국집 여주인의 한마디에
화자는 겸연쩍어 멋쩍은 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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