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파꽃 / 손창기

믈헐다 2023. 10. 18. 18:45

파꽃 / 손창기

 

파 속을 파먹는 건 꽃 속의 씨앗들인가

파 속을 먹으면 먹을수록 땅 밑부터

껍질에 힘줄이 생긴다 뼈가 박힌다

제 목을 굽혀본 적 없는 파꽃

남에게 씨앗은 될지언정

단 한 번도 식탁에 오르지 못한 파꽃

모가지를 꺾고 나서야

곁줄기들 속이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그렇게 굽힐 줄 알아야 옆자리가 몰랑몰랑해진다

 

*출처: 손창기 시집 달팽이 聖者, 북인, 2009.

*약력: 1967년 경북 군위 출생,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경북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파꽃 / 이문재

 

파가 자라는 이유는

오직 속을 비우기 위해서다

파가 커갈수록

하얀 파꽃 둥글수록

파는 제 속을 잘 비워낸 것이다

 

꼿꼿하게 홀로 선 파는

속이 없다

 

*출처: 이문재 시집 제국호텔, 문학동네, 2004.

*약력: 1959년 경기도 김포 출생, 경희대 국문과 졸업.

 

 

‘속 빈 강정’이라는 속담이 있다.

겉만 그럴듯하고 실속이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파는 속이 비어야 껍질이 부드러워 맛이 있다.

“단 한 번도 식탁에 오르지 못한 파꽃”이지만

“모가지를 꺾고 나서야 / 곁줄기들 속이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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