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브래지어를 풀고 / 김나영

믈헐다 2023. 10. 22. 01:55

브래지어를 풀고 / 김나영

 

브래지어 착용이 유방암 발생률을 70%나 높인다는

TV를 시청하다가 브래지어 후크를 슬쩍 풀어 헤쳐본다

사랑할 때와 샤워할 때 외엔 풀지 않았던

내 피부 같은 브래지어를

 

빗장 풀린 가슴으로 오소소― 전해오는

시원함도 잠깐

문 열어놔도 날아가지 못하는

새장 속에 새처럼

빗장 풀린 가슴이 움츠려든다

갑작스런 허전함 앞에 예민해지는 유두

분절된 내 몸의 지경이 당혹스럽다

 

허전함을 다시 채우자

그때서야 가슴이 경계태세를 푼다

와이어와 후크로 결박해야 비로소 안정을 되찾는

 

나는 문명이 디자인한 딸이다

내 가슴둘레엔 그 흔적이 문신처럼 박혀있다

세상 수많은 딸들의 브래지어 봉제선 뒤편

늙지 않는 빅브라더가 있다

 

*출처: 김나영 시집 수작, 애지, 2010.

*약력: 1961년 경상북도 영천 출생,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과 동대학원 박사.

 

 

브래지어 착용이 유방암 발생률을 70%나 높인다는 TV를 시청하고 쓴 시이다.

여성의 상징은 가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슴을 보호하는 목적에서 사춘기 이후 여성들은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산다.

그런데 브래지어 착용이 유방암 발생률을 70%나 높인다니,

문명의 이기가 오히려 더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참고

빅브라더(big brother)’는 개인의 정보를 독점하여 사회를 통제하는 권력이나 사회 체계를 말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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