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암동 / 박준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는 아버지가
어느 날 내 집 앞에 와 계셨다
현관에 들어선 아버지는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눈물부터 흘렸다
왜 우시냐고 물으니
사십 년 전 종암동 개천가에 홀로 살던
할아버지 냄새가 풍겨와 반가워서 그런다고 했다
아버지가 아버지, 하고 울었다
*출처: 박준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문학과지성사, 2018·2023.
*약력: 1983년 서울 출생,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과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
살면서 때로는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감성을 느낄 때가 많다.
이 시는 그런 순간을 잘 포착하여 서정시의 숨결이 진득하게 밴 작품으로
감성이 살아 있다는 것을 시적 화자는 잘 보여주고 있다.
어쩌다 외출을 한 아버지가 내 집 앞에 와서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눈물부터 흘렸다”
“사십 년 전 종암동 개천가에 홀로 살던 / 할아버지 냄새가 풍겨와 반가워서 그런다고 했다”
무뚝뚝한 아버지도 당신의 아버지가 그리워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서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참고
이 시는 'KBS1 우리말겨루기 970회(2023년 8월 21일)' 방송에서 시인이 직접 소개한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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