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이 반짝일 때 / 박형진
연애편지를 쓰고 싶다
어쩌다 한 번
길에서 만난 사람일지라도
이제 막 긴 잠에서 깨어나는
저 붉은 튤립의 몸짓을 보면
연애편지를 쓰고 싶다
연둣빛 숲에 서 있는
나는 소년의 마음
아침 햇살과
타오르는 노을의 설렘으로만
밤 깊도록 연애편지를 쓰고 싶다
수많은 언어들이
우리 곁을 어지럽게 떠돌고
묵은 통증은 가슴에서
다시 화살처럼 반짝이는데
사랑한다 사랑한다고만 쓰고 싶다
너 없이는 못살겠다고만 쓰고 싶다
*출처: 박형진 시집 『내 왼쪽 가슴속의 밭』, 천년의시작, 2022.
*약력: 1958년 전북 부안 출생, 초등학교 졸업, 1992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등단, 농부.
평생을 농부로 살고 있는 시인은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이다.
어쩌면 세상에 때 묻지 않은 그런 삶이 이렇게 맑고 고운 마음을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아프면 통증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시인에겐 그런 통증조차도 반짝이게 한다.
“묵은 통증은 가슴에서 / 다시 화살처럼 반짝”이니 말이다.
티 없이 맑고 깨끗한 소년의 마음이라야 가능하지 않겠는가.
'빛나는세상 > 출석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벽돌 한 장 / 배영옥 (0) | 2023.10.22 |
---|---|
브래지어를 풀고 / 김나영 (0) | 2023.10.22 |
파꽃 / 손창기 (1) | 2023.10.18 |
종암동 / 박준 (0) | 2023.10.18 |
오래된 습관 / 최규환 (1) | 2023.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