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꽃 / 손창기
파 속을 파먹는 건 꽃 속의 씨앗들인가
파 속을 먹으면 먹을수록 땅 밑부터
껍질에 힘줄이 생긴다 뼈가 박힌다
제 목을 굽혀본 적 없는 파꽃
남에게 씨앗은 될지언정
단 한 번도 식탁에 오르지 못한 파꽃
모가지를 꺾고 나서야
곁줄기들 속이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그렇게 굽힐 줄 알아야 옆자리가 몰랑몰랑해진다
*출처: 손창기 시집 『달팽이 聖者』, 북인, 2009.
*약력: 1967년 경북 군위 출생,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경북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파꽃 / 이문재
파가 자라는 이유는
오직 속을 비우기 위해서다
파가 커갈수록
하얀 파꽃 둥글수록
파는 제 속을 잘 비워낸 것이다
꼿꼿하게 홀로 선 파는
속이 없다
*출처: 이문재 시집 『제국호텔』, 문학동네, 2004.
*약력: 1959년 경기도 김포 출생, 경희대 국문과 졸업.
‘속 빈 강정’이라는 속담이 있다.
겉만 그럴듯하고 실속이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파는 속이 비어야 껍질이 부드러워 맛이 있다.
“단 한 번도 식탁에 오르지 못한 파꽃”이지만
“모가지를 꺾고 나서야 / 곁줄기들 속이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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