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가 피는 것은 / 길상호
바람 차가운 날
국화가 피는 것은,
한 잎 한 잎 꽃잎을 펼 때마다
품고 있던 향기 날실로 뽑아
바람의 가닥에 엮어 보내는 것은,
생의 희망을 접고 떠도는 벌들
불러 모으기 위함이다
그 여린 날갯짓에
한 모금의 달콤한 기억을
남겨 주려는 이유에서이다
그리하여 마당 한편에
햇빛처럼 밝은 꽃들이 피어
지금은 윙윙거리는 저 소리들로
다시 살아 오르는 오후,
저마다 누런 잎을 접으면서도
억척스럽게 국화가 피는 것은
아직 접어서는 안 될
작은 날개들이 저마다의 가슴에
움트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길상호 시집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 걷는사람, 2018.
*약력: 1973년 충남 논산 출생,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국화 꽃잎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작은 물결처럼 파르르 떨며,
그리움의 꽃잎 펼 때마다 부르르 깃털을 털고는 하늘 향해 날아오른다.
온 세상을 떠도는 벌들 그것도 생의 희망을 잃고 떠도는 벌들을 부르기 위함일까.
이 가을 국화가 저리 억척같이 피어나는 것은 작은 날개들이 솟아나
아직 접어서는 안 될 날개들이 가슴에서 가슴으로 움트고 있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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