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국화가 피는 것은 / 길상호

믈헐다 2023. 11. 9. 23:43

국화가 피는 것은 / 길상호

 

​바람 차가운 날

국화가 피는 것은,

한 잎 한 잎 꽃잎을 펼 때마다

품고 있던 향기 날실로 뽑아

바람의 가닥에 엮어 보내는 것은,

생의 희망을 접고 떠도는 벌들

불러 모으기 위함이다

그 여린 날갯짓에

한 모금의 달콤한 기억을

남겨 주려는 이유에서이다

그리하여 마당 한편에

햇빛처럼 밝은 꽃들이 피어

지금은 윙윙거리는 저 소리들로

다시 살아 오르는 오후,

저마다 누런 잎을 접으면서도

억척스럽게 국화가 피는 것은

아직 접어서는 안 될

작은 날개들이 저마다의 가슴에

움트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길상호 시집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 걷는사람, 2018.

*약력: 1973년 충남 논산 출생,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국화 꽃잎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작은 물결처럼 파르르 떨며,

그리움의 꽃잎 펼 때마다 부르르 깃털을 털고는 하늘 향해 날아오른다.

온 세상을 떠도는 벌들 그것도 생의 희망을 잃고 떠도는 벌들을 부르기 위함일까.

이 가을 국화가 저리 억척같이 피어나는 것은 작은 날개들이 솟아나

아직 접어서는 안 될 날개들이 가슴에서 가슴으로 움트고 있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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