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그늘은 울기 좋은 곳이다 / 유은희
매미 울음 받아내기 위해
느티나무는 그늘을 펼치는 것이다
깊이 꺼내 우는 울음
다 받아주는 이 있어
그래도 매미 속은 환해지겠다
느티나무 발등 흥건하도록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전생을 쏟아야 하는 슬픔인 것이다
어깨가 넓은 느티나무 그늘은
울기 참 좋은 곳이어서
언뜻언뜻 하늘도 눈가를 훔친다
느티나무도 덩달아 글썽해져서
일부러 먼 산에 시선을 메어두고 있다
저녁 산이 붉어지는 까닭이다
느티나무 어깨에 기대어
울음 송두리째 꺼내 놓고 나면
매미 허물처럼 가벼워질까
사랑, 그 울음이 빠져나간 몸은
한 벌 허물에 불과할 테니
*출처: 유은희 시집 『떠난 것들의 등에서 저녁은 온다』, 천년의 시작, 2019.
*약력: 전남 완도 출생,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남몰래 혼자서 실컷 울고 나면 속은 시원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받아줄 이 없는 울음은 허망함이 밀려올 수 있기 때문이다.
울음을 안아주는 넓은 어깨처럼 울기 좋게 그늘을 만들어주는 느티나무는
“일부러 먼 산에 시선을 메어두고 있다 / 저녁 산이 붉어지는 까닭이다”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는 울음 대신 붉어지는 저녁 산을 바라볼 때가 그렇지 않겠는가.
'빛나는세상 > 출석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늦가을 / 성원근 (0) | 2023.11.11 |
---|---|
국화가 피는 것은 / 길상호 (1) | 2023.11.09 |
느티나무 / 신달자 (0) | 2023.11.08 |
명태 / 성윤석 (0) | 2023.11.06 |
며느리밥풀꽃 / 최두석 (0) | 2023.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