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깃털이 죽지 않고 / 김일영

믈헐다 2023. 11. 22. 22:52

깃털이 죽지 않고 / 김일영

 

간절히 손을 내밀지만

저 주검을 끌어당겨줄 바람은

오지 않는다

 

타이어는 짓밟힌 새를 거듭 짓밟고 가지만

솜털 깊숙이 기억된 항로가

바람을 붙잡는다

 

아스팔트를 뽑아 일으키며 날아갈

바람의 씨앗,

깃털이 죽지 않고 손을 든다

 

*출처: 김일영 시집 삐비꽃이 아주 피기 전에, 실천문학사, 2009.

*약력: 1970년 전남 완도 출생,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 졸업. 2003한국일보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타이어에 짓밟힌 새는 주검에 지나지 않지만,

시인의 상상력은 보잘 것 없는 솜털 하나 속에서 자유롭게 비상하던 새의 항로를 더듬는다.

깃털이 “아스팔트를 뽑아 일으키며” 날아간다는 역동적 상상력이 작동하여

죽음 속에서 죽음 너머를 꿈꾸는 새로운 ‘씨앗’의 역설을 낳는다.

그것은 당대의 풍경을 절제된 시선으로 묘사하여야 가능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