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는 다섯 번을 죽어서야 김치가 된다 / 김삼환
순식간에 뽑혀 나와 부르르 떠는 배추
그렇다 분수처럼 절정에서 꺾이는 것
전율은 솟구친 몸이 떨어질 때 오는 거다
증거는 충분하지, 두 쪽으로 배를 갈라
차곡차곡 쌓아 온 이력들을 흔드는 것
오로지 결기(潔己)하나로 한 번 외쳐 보는 거다
소금기가 구석구석 온 몸으로 스며들 때
누구인들 한 번쯤 이렇게 푹 젖다 보면
사나흘 생각이 깊어 돌아갈 수 없는 거다
고추 마늘 온갖 양념을 한 통속에 비벼서
덥고 춥고 맵고 짠맛을 한꺼번에 겪는 것
세상의 눈치 살피며 풀 죽을 수 있는 거다
입 안에서 씹힐 때 마지막 숨 거두며
다섯 번을 죽어서야 맛을 내는 배추처럼
몇 번을 까무러쳐야 시 한 편이 되는 거다
*출처: Daum & NAVER.
*약력: 1958년 전남 강진 출생, 세종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예술경영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 박사과정 수료.
배추가 땅에서 뽑힐 때 한 번 죽고, 통배추가 반으로 잘리면서 두 번 죽고,
소금에 절여지면서 세 번 죽고, 고춧가루와 젓갈에 범벅이 되어서 네 번 죽고,
김장독에 묻히거나 냉장고에서 다섯 번 죽어야 제대로 된 김치 맛을 내니 말이다.
우리네 인생살이도 살다보면 자존심, 성질, 편견, 아집 따위를 죽여야 할 때가 많다.
우리도 몇 번 씩 죽어 김장김치처럼 깊은 맛을 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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