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밥 / 전윤호
신도 동네마다 이름이 달라
다르게 부르면 해코지하는데
밥은 사투리가 없다
이 땅 어디나 밥이다
함께하면 식구가 되고
혼자 먹어도 힘이 되는 밥
어떤 그릇을 놓고
어떤 수저를 펼쳐놓든
김이 오르는 밥 앞에 모두 평등하니
이보다 귀한 이름이 더 있겠나
논이 부족한 제주도에서
쌀밥은 아름다워 곤밥이라 부른다니
사랑하는 사람이여
우리 밥이나 함께하자
*출처: 전윤호 시집 『슬픔도 깊으면 힘이 세진다』, 북인, 2020.
*약력: 1964년 강원도 정선 출생, 동국대학교 사학과 졸업, 199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우리는 흔히 ‘밥이 보약이다’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고운 밥’처럼 밥 앞에 형용사를 붙이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삼시 세끼가 늘 ‘예쁜 밥’, ‘아름다운 밥’, ‘착한 밥’이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 우리 밥이나 함께하자”
아지랑이처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사랑스러운 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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