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고운 밥 / 전윤호

믈헐다 2023. 11. 24. 23:16

고운 밥 / 전윤호

 

신도 동네마다 이름이 달라

다르게 부르면 해코지하는데

밥은 사투리가 없다

이 땅 어디나 밥이다

함께하면 식구가 되고

혼자 먹어도 힘이 되는 밥

어떤 그릇을 놓고

어떤 수저를 펼쳐놓든

김이 오르는 밥 앞에 모두 평등하니

이보다 귀한 이름이 더 있겠나

논이 부족한 제주도에서

쌀밥은 아름다워 곤밥이라 부른다니

사랑하는 사람이여

우리 밥이나 함께하자

 

*출처: 전윤호 시집 슬픔도 깊으면 힘이 세진다, 북인, 2020.

*약력: 1964년 강원도 정선 출생, 동국대학교 사학과 졸업, 1991 현대문학으로 등단.

 

 

 

우리는 흔히 ‘밥이 보약이다’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고운 밥’처럼 밥 앞에 형용사를 붙이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삼시 세끼가 늘 ‘예쁜 밥’, ‘아름다운 밥’, ‘착한 밥’이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 우리 밥이나 함께하자”

아지랑이처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사랑스러운 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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