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그 눈망울의 배후 / 복효근

믈헐다 2023. 5. 9. 04:58

그 눈망울의 배후 / 복효근

 

​가난한 이웃나라 어느 빈촌에 갔을 때

진열대에 싸구려 과자만 잔뜩 쌓여있는

허름한 가게 하나 있었다

 

헐벗은 아이들의 초롱한 눈망울이 애처로워

몇 푼씩 주려 하자

안내를 맡은 이가 돈을 주는 대신 가게에서 과자를 사서

한 봉지씩 쥐여주라고 했다

 

과자 한 봉지씩 쥐여주고

쓰러져가는 집들을 돌아보고 골목을 벗어나려는데

아이들 손에 들렸던 과자는 다시 거두어져

진열대에 놓이는 것을 보았다

 

내가 준 것이 독이었을까 약이었을까

내가 지은 것이 복이었을까 죄였을까

 

어느 하늘보다 별이 맑은 그 밤

끝내 묻지 못하였다

아이들의 머루알 같은 그 눈망울의 배후

 

*출처: 복효근 시집 예를 들어 무당거미, 현대시학사, 2021.

*약력: 1962년 전라북도 남원 출생,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졸업.

 

 

"가난한 이웃나라 어느 빈촌"의 이야기이다.

시인은 어느 허름한 가게에서 만난 헐벗은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노래한다.

쓰러져가는 집들처럼 애처롭게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 머루알 같은 눈망울에

자신이 어떤 독과 약 그리고 복과 죄를 주었는지 모르겠다는 고백이다.

낯선 곳에서의 경이로운 흥분 대신에 그 지극한 연민의 마음이

"어느 하늘보다 별이 맑은 그 밤"을 우리에게 밝혀주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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