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눈망울의 배후 / 복효근
가난한 이웃나라 어느 빈촌에 갔을 때
진열대에 싸구려 과자만 잔뜩 쌓여있는
허름한 가게 하나 있었다
헐벗은 아이들의 초롱한 눈망울이 애처로워
몇 푼씩 주려 하자
안내를 맡은 이가 돈을 주는 대신 가게에서 과자를 사서
한 봉지씩 쥐여주라고 했다
과자 한 봉지씩 쥐여주고
쓰러져가는 집들을 돌아보고 골목을 벗어나려는데
아이들 손에 들렸던 과자는 다시 거두어져
진열대에 놓이는 것을 보았다
내가 준 것이 독이었을까 약이었을까
내가 지은 것이 복이었을까 죄였을까
어느 하늘보다 별이 맑은 그 밤
끝내 묻지 못하였다
아이들의 머루알 같은 그 눈망울의 배후
*출처: 복효근 시집 『예를 들어 무당거미』, 현대시학사, 2021.
*약력: 1962년 전라북도 남원 출생,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졸업.
"가난한 이웃나라 어느 빈촌"의 이야기이다.
시인은 어느 허름한 가게에서 만난 헐벗은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노래한다.
쓰러져가는 집들처럼 애처롭게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 머루알 같은 눈망울에
자신이 어떤 독과 약 그리고 복과 죄를 주었는지 모르겠다는 고백이다.
낯선 곳에서의 경이로운 흥분 대신에 그 지극한 연민의 마음이
"어느 하늘보다 별이 맑은 그 밤"을 우리에게 밝혀주는 것이리라.
'빛나는세상 > 출석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ㄹ / 정록성 (0) | 2023.05.10 |
---|---|
김밥 마는 여자 / 장만호 (0) | 2023.05.10 |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 이상국 (0) | 2023.05.08 |
택시 / 박지웅 (0) | 2023.05.07 |
속삭이는 봄비 / 심후섭 (1) | 2023.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