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은 많으나 이만 줄입니다 / 원춘옥
밥상에 앉은 다혈질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숨 죽은 콩나물처럼, 시금치처럼 여자는 “할 말은 많으나 이만 줄임”이라고 눈으로 쓴다 밥상에 앉은 남자가 여자를 쏘아본다 여자는 묵묵히 사골 찜솥을 준비한다 이 국물만 고아 내면 서로의 간도 맞는 맞춤형이 되겠지 남자는 양푼 가득 마늘을 담아와 까기 시작한다 매운 냄새가 서로의 관계처럼 자극한다 남자도 “할 말은 많으나 이만 줄임” 집안 분위기로 쓴다 누가 초식형이었는지 누가 육식형이었는지 알 수 없는 두 사람 사이에는 깐 마늘만 수북이 쌓여있는
*출처: 원춘옥 시집 『할 말은 많으나 이만 줄입니다』, 상상인, 2023.
*약력: 서울 출생, 국문학 전공, 2004년 『문학세계』 등단, 시, 서예, 캘리그라피, 수묵화가.
다혈질 남자와 그 성질머리에 길들여진 여자가 함께 살고 있다.
남편이 소리를 지르거나 말거나 제 할 일을 하는 아내,
아내가 시키지는 않았지만 말없이 마늘을 까는 남편이다.
입맛이 다른 초식형과 육식형이 만났으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성이 오갔을까.
나이가 들수록 다툴 힘도 다 빠져버렸으니 "두 사람 사이에는 깐 마늘만 수북이 쌓여"
서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할 말은 많으나 이만 줄임"으로 손발을 맞추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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