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 / 박은준
늦은 밤
누군가에 의해 버려진
콩알만 한 글자들을 주워
작은 시루에 담아 검은 보자기
씌워 놓았다
햇살 바른 곳에 놓아두고
볼 때마다 물을 듬뿍 주었다
보름달 차오르는 밤
노란 음표들의 합창소리 들려온다
한 줌 쑥 뽑아내어 국을 끓였다
시원하고 속이 확 풀리는 말들이
아삭하게 씹혔다
*출처: 풀과별, 『행복의 레시피』, 문화발전, 2011.
*참고: 「지하철 시집」 제3권 『행복의 레시피』는 서울시가 공모한 ‘2011년 시민 시 선정작’에서 가려뽑은 시 115편을 수록.
우리는 하루에 얼마나 많은 말들을 쏟아낼까.
그 중에 의미 있는 참으로 유용한 말들도 있지만
때로는 독설로 혹은 상스러운 말로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낸 말들도 있을 것이다.
시인은 이런 말들을 "늦은 밤"에 주워 모아
콩나물 키우듯 시루에 넣고 검은 보자기를 씌워 숙성을 시킨다.
버려진 글자들은 물을 먹고 햇살을 받아 "보름달 차오르는 밤"이 되면 숙성이 되어
"노란 음표들의 합창소리 들려온다"
이들을 뽑아 국을 끓이면 콩나물국처럼 "시원하고 속이 확 풀리는 말들이"
콩나물처럼 "아삭하게 씹혔다"고 하니 이 얼마나 맛깔스럽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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