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꽃 / 김승기
장대비 같은 햇살 머리에 이고
찾은 절간에서
동자야
때 묻은 세상살이 주름진 얼굴
청산에 흐르는 냇물로 씻어
곧게 펼 수 있을까
가슴앓이
그 팔만사천의 번뇌를 지우고
맑은 詩를 쓸 수 있을까
지친 사람들 어깨 위에
엉킨 실타래처럼 얹혀진 억지들
지금이라도 술술 풀 수 있는
동심 되찾아
따뜻하게 온 누리 빨아 널 수 있을까
합장하였더니
저만치 샘물 곁에서
흐르는 냇물 들끓는 번뇌 그대로 두고
엉킨 실타래도 그대로 두고
물 한 모금으로
마음이나 씻으라 손짓하네
*출처: 김승기 시집 『옹이 박힌 얼음 위에서도 꽃은 핀다』, 타임비, 2012.
*약력: 강원도 속초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계간 「詩마을」 신인작품상 수상.
‘동자꽃’은 여름 꽃으로 동자승과 같이 예쁜 꽃이라 하여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식량을 구하러 간 큰 스님을 기다리다 눈 속에 얼어 죽은 동자승이 환생하여 피어난 꽃이라는 전설도 있다.
뜨거운 여름날 “장대비 같은 햇살 머리에 이고 / 찾은 절간에서” 동자꽃에게 묻는다.
“때 묻은 세상살이 주름진 얼굴 / 청산에 흐르는 냇물로 씻어 / 곧게 펼 수 있을까”
“가슴앓이 / 그 팔만사천의 번뇌를 지우고 / 맑은 詩를 쓸 수 있을까”
“지친 사람들 어깨 위에 / 엉킨 실타래처럼 얹혀진 억지들 /
지금이라도 술술 풀 수 있는 / 동심 되찾아 / 따뜻하게 온 누리 빨아 널 수 있을까”
시인으로서 좋은 시를 쓰고픈 욕망과 세상살이의 어지러움을 맑고 깨끗하게 펼치고자 하는 바람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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