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번짐의 속성 / 김문배

믈헐다 2023. 7. 27. 00:10

번짐의 속성 / 김문배

 

시작은 언제나

작은 스침이었다

유입된 감정은

경계를 벗어난 번짐으로

방향과 속도를 잃은 채

촉촉이 젖어 간다

 

체온을 공유하지 않고도

뜨거워진 심장

모세혈관을 타고 흐르는

림프액처럼

무너진 담장을 넘어

몸속 깊숙이 파고 든다

 

수묵화는

경계를 벗어난 번짐이요

사랑은

기다림과 갈증의 미학이다

 

*출처: 김문배 시집 번짐의 속성, 한강, 2020.

*약력: 전남 강진 출생, 1930년대 김영랑 시인과 함께 활동한 시문학파 김현구 시인의 차남.

 

 

흔히 옷깃만 스쳐도 영겁의 인연이 있다고 했다.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니 현세에서 누군가와의 만남은

“시작은 언제나 / 작은 스침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작은 스침’이 인연으로 작용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 “몸속 깊숙이 파고 든다”

먹물이 번져나가는 것처럼 은은하게 부드럽게 찾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시인은 사랑의 정의를 수묵화의 번짐을 통해 내리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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