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짐의 속성 / 김문배
시작은 언제나
작은 스침이었다
유입된 감정은
경계를 벗어난 번짐으로
방향과 속도를 잃은 채
촉촉이 젖어 간다
체온을 공유하지 않고도
뜨거워진 심장
모세혈관을 타고 흐르는
림프액처럼
무너진 담장을 넘어
몸속 깊숙이 파고 든다
수묵화는
경계를 벗어난 번짐이요
사랑은
기다림과 갈증의 미학이다
*출처: 김문배 시집 『번짐의 속성』, 한강, 2020.
*약력: 전남 강진 출생, 1930년대 김영랑 시인과 함께 활동한 ‘시문학파’ 김현구 시인의 차남.
흔히 옷깃만 스쳐도 영겁의 인연이 있다고 했다.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니 현세에서 누군가와의 만남은
“시작은 언제나 / 작은 스침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작은 스침’이 인연으로 작용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 “몸속 깊숙이 파고 든다”
먹물이 번져나가는 것처럼 은은하게 부드럽게 찾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시인은 사랑의 정의를 수묵화의 번짐을 통해 내리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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