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심야 식당 / 박소란

믈헐다 2023. 7. 30. 07:08

심야 식당 / 박소란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이 싱거운 궁금증이 오래 가슴 가장자리를 맴돌았어요

 

충무로 진양상가 뒤편

국수를 잘하는 집이 한군데 있었는데

우리는 약속도 없이 자주 왁자한 문 앞에 줄을 서곤 했는데

그곳 작다란 입간판을 떠올리자니 더운 침이 도네요 아직

거기 그 자리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맛은 그대로인지

 

모르겠어요

실은 우리가 국수를 좋아하기는 했는지

 

나는 고작 이런 게 궁금합니다

귀퉁이가 해진 테이블처럼 잠자코 마주한 우리

그만 어쩌다 엎질러버린 김치의 국물 같은 것

좀처럼 닦이지 않는 얼룩 같은 것 새금하니 혀끝이 아린 순간

순간의 맛

 

이제 더는

배고프다 말하지 않기로 해요 허기란 얼마나 촌스러운 일인지

 

혼자 밥 먹는 사람, 그 구부정한 등을 등지고

혼자 밥 먹는 일

 

형광등 거무추레한 불빛 아래

불어 선득해진 면발을 묵묵히 건져 올리며

혼자 밥 먹는 일

 

그래서

요즘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출처: 박소란 시집 한 사람의 닫힌 문, 창비, 2019.

*약력: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남 마산에서 성장,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9 문학수첩으로 등단.

 

 

이 시는 그저 평범한 문장에다가 일상의 생활에서 자주 사용되는 그런 말들이지만

그 속에 역설 내지는 반전을 내포하고 있다.

심야 식당 한편에서 "혼자 밥 먹는 사람, 그 구부정한 등을 등지고"

"불어 선득해진 면발을 묵묵히 건져 올리며 / 혼자 밥 먹는" 사람에게 눈길이 간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가서 묻고 싶어 한다.

국수를 좋아 하기는 하는지, 진짜 허기가 져서 국수를 먹는지 말이다.

요즘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여전히 싱거운 궁금증이 사라지지 않은 건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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