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 연못에서 / 주용일
시절 만난 연꽃 피었다
그 연꽃 아름답다 하지 마라
더러움 딛지 않고 피는 꽃 어디 있으랴
오욕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삶 어디 있으랴
생각해 보면 우리도 음부에서 피어난 꽃송이다
애초 생명의 자리는
늪이거나 뻘이거나 자궁이거나
얼마큼 질척이고 얼마쯤 더럽고
얼마쯤 냄새나고 얼마쯤 성스러운 곳이다
진흙 속의 연꽃 성스럽다 하지 마라
진흙 구멍에 처박히지 않고
진흙 구멍에 뿌리박지 않은 생 어디 있으랴
*출처: 주용일 시집 『문자들의 다비식은 따뜻하다』, 문학과경계사, 2003.
*약력: 1964년 충북 영동 출생,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5년 타계.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에 “더러움 딛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삼라만상의 모든 생명체의 태어난 자리가 오욕의 터전이라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가 싹트는 곳은 “늪이거나 뻘이거나 자궁이거나 / 얼마큼 질척이고 얼마쯤 더럽고 / 얼마쯤 냄새나고 얼마쯤 성스러운 곳이다”
이렇게 모든 생명체는 고난과 고통과 역경의 질곡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리라.
*참고
‘뻘’은 갯바닥이나 늪 바닥에 있는 거무스름하고 미끈미끈한 고운 흙을 말하는 ‘개흙’의 방언.
'빛나는세상 > 출석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홍의 서사 / 서안나 (0) | 2023.08.03 |
---|---|
엉덩이로 쓰는 시 / 서안나 (0) | 2023.08.02 |
빨래를 접으며 / 김동석 (0) | 2023.07.31 |
심야 식당 / 박소란 (0) | 2023.07.30 |
수묵의 사랑 / 손택수 (1) | 2023.0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