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의 서사 / 서안나
분홍 속엔 분홍이 없다
흰색이 멀리 뻗은 손과
빨강이 내민 손
나와 당신이
정원에서
늙은 정원사처럼
차츰 눈이 어두워지는
사라지는 우리는
분홍
*출처: 서안나 시집 『새를 심었습니다』, 여우난골, 2022.
*약력: 1965년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박사 학위, 1990년《문학과 비평》으로 등단.
분홍은 흰색과 빨간색이 혼합한 색이니
“분홍 속엔 분홍이 없다”는 것이 당연한 말인지 모른다.
그러나 궁극의 뜻은 섞은 색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닐 터이니,
색채가 흐릿해지고 또는 변해간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멀리 뻗은 흰색의 당신과 내가 내민 빨강의 손이 만나
“차츰 눈이 어두워지는 / 사라지는” 분홍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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