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종이무덤 / 전윤호

믈헐다 2023. 8. 3. 23:59

종이무덤 / 전윤호

 

​너희들이 땅 사고

건물 올릴 때

벽돌 지고

벽을 칠했지

더 좋은 묘지를 만든답시고

법을 어기고

더 큰 묘지 올리라면

바위 캐내다

때로 순장도 당했지

밤마다 욱신거리는 몸으로

시를 쓴다

언젠가는 도굴당할

이 거대한 무덤 속에서

무너지지 않는 내 무덤

태워도 태워지지 않고

훔쳐도 훔쳐지지 않는

천 년 무덤을 위해

 

*출처: 전윤호 시집 밤은 깊고 바다로 가는 길은, 걷는사람, 2022.

*약력: 1964년 강원도 정선 출생, 동국대학교 사학과 졸업, 1991 현대문학으로 등단.

 

(경기도 여주 세종 대왕릉)

 

시인은 무덤의 방식으로 시의 세계를 인지한다.

현대인들이 돈을 모아 땅을 사고, “더 좋은 묘지”를 만들 때

시인은 벽돌을 지고 벽을 칠한다.

그들이 무자비한 자본으로 쌓아 올리는 “거대한 무덤” 속에서도

시인은 “태워도 태워지지 않고 / 훔쳐도 훔쳐지지 않는 / 천 년 무덤을 위해”

“밤마다 욱신거리는 몸으로 시를 쓰”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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