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무덤 / 전윤호
너희들이 땅 사고
건물 올릴 때
벽돌 지고
벽을 칠했지
더 좋은 묘지를 만든답시고
법을 어기고
더 큰 묘지 올리라면
바위 캐내다
때로 순장도 당했지
밤마다 욱신거리는 몸으로
시를 쓴다
언젠가는 도굴당할
이 거대한 무덤 속에서
무너지지 않는 내 무덤
태워도 태워지지 않고
훔쳐도 훔쳐지지 않는
천 년 무덤을 위해
*출처: 전윤호 시집 『밤은 깊고 바다로 가는 길은』, 걷는사람, 2022.
*약력: 1964년 강원도 정선 출생, 동국대학교 사학과 졸업, 1991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인은 무덤의 방식으로 시의 세계를 인지한다.
현대인들이 돈을 모아 땅을 사고, “더 좋은 묘지”를 만들 때
시인은 벽돌을 지고 벽을 칠한다.
그들이 무자비한 자본으로 쌓아 올리는 “거대한 무덤” 속에서도
시인은 “태워도 태워지지 않고 / 훔쳐도 훔쳐지지 않는 / 천 년 무덤을 위해”
“밤마다 욱신거리는 몸으로 시를 쓰”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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