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퇴고 / 서정춘
시여, 가을날 기러기는 높고 푸른 하늘만 보면 거기 반드시 시 한 줄을 쓰면서
앞줄 고쳐 묻고 뒷줄 따라 묻고 여러 번씩 읽어가는 글공부 소리를 잘도나 들려준 적 있었나니,
*출처: 서정춘 시집 『귀』, 시와시학사, 2005.
*약력: 1941년 전남 순천 출생, 순천 매산고 졸업,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기러기는 가을에 우리나라로 와서 봄에 추운 지역으로 떠나는 겨울 철새이다.
‘V’나 ‘W’ 모양으로 떼 지어 비행하는 광경은 과히 우아하고 신비롭다.
“앞줄 고쳐 묻고 뒷줄 따라 묻고”, 글을 지을 때 고치고 다듬는 퇴고의 모양새다.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가 ‘推(밀 퇴)’와 ‘敲(두드릴 고)’로 고민하는 것처럼 말이다.
*참고
‘잘도나’는 ‘매우’의 제주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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