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바람 한나절 / 유재영
종이배 등 떠미는 어린 바람 한나절
아직도 일곱 살 때 헤어진 물소리가……
뻘기꽃 목마른 언덕 은빛 새가 와서 운다
덩굴손 머문 자리 연둣빛 자국 같은,
관절 긴 생각들이 그렇게 물이 들고
키 낮은 무덤 너머로 낮달 하나 떠 있다
*출처: 유재영 시조집, 『햇빛시간』, 태학사, 2001.
*약력: 1948년 충남 천안 출생, 1973년 박목월 시인에게는 시를, 이태극 선생으로부터 시조를 추천 받아 문단에 나옴.
시가 이처럼 잔잔한 호수에 햇살이 그림을 그려 놓은 것보다
더 섬세하고 깔끔한 수채화로 그릴 수가 있을까.
어린아이 손짓 같은 바람이 종이배 등 떠미는 모습을 보면서
일곱 살에 들었던 개울물 소리를 추억의 곳간에서 한소끔 끄집어낸다.
개울물소리는 뻘기꽃 목마른 언덕에 은빛 새소리가 들리고
키 낮은 무덤 너머에 낮달이 떠 있는 모습이 선명하니 말이다.
*참고
'뻘기꽃'은 갈대꽃의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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