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밀양 / 나석중

믈헐다 2023. 9. 2. 23:13

밀양 / 나석중

 

아픈가?

만어산 돌띠를 두른 허리

무량, 무량 닫은 문

누구 있소?

두드리면 우주의 목청 알 수 없지만

다시 캄캄 걸어 잠그는 문, 문······

그렇다고 잠만 자는 돌들은 아니어서

붙박이 돌강의 마음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이건 육천오백만 년 전 솟아오른 아우성

그만큼 침묵도 오래 닳고 닳으면

맑은 종소리를 내는가

종석鐘石이라 돌강石江이라 부르는 너덜겅

그저 상상은 억측일 뿐이다

눈멀고

귀 닫고

입 다문다

 

*출처: 나석중 시선집 노루귀, b, 2023.

*약력: 1938년 전북 김제 출생, 2005년 시집 숨소리로 작품 활동 시작.

 

 

경남 밀양의 만어산 자락에 ‘만어사(萬魚寺)’라는 절이 있다.

삼국유사에도 등장하는 유서 깊은 사찰로 ‘만 마리의 물고기’가 있다는 절이다.

절의 비탈에는 너덜겅이라는 어마어마한 돌무지가 있다.

전설에 의하면 수만 마리의 물고기가 돌무더기로 변했다고 한다.

두들겨 보면 맑은 쇳소리가 나기 때문에 종석(鐘石)이라고도 한다고 한다.

그것을 시인은 “육천오백만 년 전 솟아오른 아우성”의 소리라며,

“그만큼 침묵도 오래 닳고 닳으면 / 맑은 종소리를 내는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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