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풍경이 울다 / 이종형

믈헐다 2023. 9. 4. 06:25

풍경이 울다 / 이종형

 

북촌 한옥마을에 하룻밤 묵는데

처마 밑 풍경이 밤 깊도록 운다

그 울음을 안아다 머리맡에 누이고

내가 뒤척이는지 네가 징징거리는지

잠은 달아나고, 밤새

서럽고 원망스러운 하소연이나 조곤조곤 나눌까

객짓밥 십 년이면 한 끼 허기쯤 견뎌낼 수 있지만

떠나온 곳이 어딘지 기억이 나질 않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해서 슬픈

푸른 물고기들이 헤엄치는데

저 울음들을 버려두고

다시 섬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밤새 뒤척이며 잠을 설친 그 밤

 

*출처: 이종형 시집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 삶이보이는창, 2017.

*약력: 제주 출생, 2004 제주작가로 작품 활동 시작.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면서 그윽하게 소리 내는 풍경(風磬)이

고향을 그리는 화자의 마음을 달래주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풍경의 “그 울음을 안아다 머리맡에 누이고”

화자가 뒤척이는지 풍경이 징징거리는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해서 슬픈 / 푸른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으로 생각하니

“저 울음들을 버려두고 / 다시 섬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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