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매미 소리 / 문성해

믈헐다 2023. 9. 6. 02:19

매미 소리 / 문성해

 

내 머리에 바늘구멍 뚫는 소리

빽빽하게 들어찬 실뭉치들 들쑤시다

꼭꼭 숨은 실 끝 하나 찾아 들어올리는 소리

 

햇살 아래 선연히 빠져나가는 핏줄의 행렬

저 소리는 나무 하날 다 휘감더니

공중에 눈부신 피륙 하나 걸어놓더니

 

아뿔싸, 천년을 끌 것 같던 소리가

홀연, 날아가버린 날!

 

내 머리에 황망히 바늘구멍 닫히고

길 잃은 누더기 하나 나무에서 떨어지는 소리……

 

*출처: 문성해 시집 자라, 창비, 2005.

*약력: 1963년 경북 문경 출생,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올여름은 여느 해보다 더운 것만큼 매미 소리도 지독했다.

웬만하면 목이 쉬어 그칠 만도 할 터인데 말이다.

어쩌면 매미는 그런 걸 생각할 겨를도 없을 것이다.

수년의 애벌레기를 거쳐 성충이 되어 여름이 지나면 생이 끝나니까 말이다.

​풀과 꽃과 나무 그리고 바람과 햇살을 대신해 울어준 매미처럼

나를 대신해 울어주는 사람만큼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도 없을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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