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 한 장 / 배영옥
유모차 안에 갓난아기도 아니고
착착 쌓은 폐지 꾸러미도 아닌,
벽돌 한 장 달랑 태우시고 가는 할머니
제 한 몸 지탱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무게가
벽돌 한 장의 무게라는 걸까
붉은 벽돌 한 장이
할머니를 겨우 지탱하고 있다
느릿한 걸음으로
이쪽으로 저쪽으로 옮겨 다니는 유모차 할머니
너무 가벼운 생은 뒤로 벌렁 넘어질 수 있다
한평생 남은 것이라곤 벽돌 한 장밖에 없다는 듯이
허리 한 번 펴고 더 굽어지는 할머니
벽돌 한 장이 할머니를 고이고이 모셔간다
*출처: 배영옥 시집 『뭇별이 총총』, 실천문학사, 2011.
*약력: 1966년 대구 출생,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2018년 향년 53세로 별세.
허리 굽은 할머니가 폐지나 빈 병 따위를 실은 유모차를 밀고 가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다.
또한 시골 오일장에서는 시장바구니 대신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듯 어린아이를 태워서 밀고 다니는 원래 용도와 달리 그 쓰임새는 다양하다.
시인은 달랑 붉은 벽돌 한 장을 유모차에 태우고 가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시사점을 던진다.
“너무 가벼운 생은 뒤로 벌렁 넘어질 수 있다”며,
“한평생 남은 것이라곤 벽돌 한 장밖에 없다는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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