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벽돌 한 장 / 배영옥

믈헐다 2023. 10. 22. 01:58

벽돌 한 장 / 배영옥

 

​유모차 안에 갓난아기도 아니고

착착 쌓은 폐지 꾸러미도 아닌,

벽돌 한 장 달랑 태우시고 가는 할머니

 

제 한 몸 지탱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무게가

벽돌 한 장의 무게라는 걸까

 

붉은 벽돌 한 장이

할머니를 겨우 지탱하고 있다

 

느릿한 걸음으로

이쪽으로 저쪽으로 옮겨 다니는 유모차 할머니

 

너무 가벼운 생은 뒤로 벌렁 넘어질 수 있다

한평생 남은 것이라곤 벽돌 한 장밖에 없다는 듯이

허리 한 번 펴고 더 굽어지는 할머니

 

벽돌 한 장이 할머니를 고이고이 모셔간다

 

*출처: 배영옥 시집 뭇별이 총총, 실천문학사, 2011.

*약력: 1966년 대구 출생,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2018년 향년 53세로 별세.

 

 

허리 굽은 할머니가 폐지나 빈 병 따위를 실은 유모차를 밀고 가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다.

또한 시골 오일장에서는 시장바구니 대신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듯 어린아이를 태워서 밀고 다니는 원래 용도와 달리 그 쓰임새는 다양하다.

시인은 달랑 붉은 벽돌 한 장을 유모차에 태우고 가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시사점을 던진다.

“너무 가벼운 생은 뒤로 벌렁 넘어질 수 있다”며,

“한평생 남은 것이라곤 벽돌 한 장밖에 없다는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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