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시인의 선물 / 최서림

믈헐다 2023. 11. 3. 23:52

시인의 선물 / 최서림

 

​서리 맞고도 매달려 있는 홍시는

까치에게 줄 선물이다

내 유일한 사랑만큼이나 붉은

마당귀 아가위나무 열매 역시

어치에게 거저 주는 선물이다

갈매마을에서 세 들어 사는

땅콩만큼 작은 내겐

초겨울 저녁 하늘만 한 꿈이 있다

때죽나무 가지 끝에 걸린 감빛 노을을

엽서로 오려 부쳐주고 싶다

돈으로는 살 수도 없는

차이콥스키 협주곡처럼 낮게 깔린 안개,

둘레길에 수북이 쌓인 떡갈나무 잎은

타워팰리스에 사는 친구에게 한 박스 보낼 참이다

앞산의 갈대, 계곡물의 송사리, 이끼 낀 바위, 구절초와 감국

모두 값없이 받아 보내줄 게 너무 많다

하늘과 산과 들판은

줄 게 많은 나를 가장 사랑한다

 

*출처: 최서림 시집 사람의 향기, 시와에세이, 2019.

*약력: 1956년 경북 청도 출생, 서울대학교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시인이 줄 선물이야 어디 자연에서 생성된 것뿐이랴.

시를 쓴다는 것은 자연의 선물처럼 모든 이들에게 다 나누어 준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만인에게 행복을 안겨 주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자가 아닐까.

“하늘과 산과 들판은 / 줄 게 많은 나를 가장 사랑한다”니 말이다.

서울 강남의 상류층이 모여 사는 일명 귀족타운이라는 ‘타워팰리스’에 사는 친구에게는

둘레길에 수북이 쌓인 떡갈나무 잎을 한 박스 보낼 참이라니 의미심장한 말이다.

-믈헐당 -

 

'빛나는세상 > 출석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며느리밥풀꽃 / 최두석  (0) 2023.11.06
낙과(落果) / 정호승  (0) 2023.11.04
코스모스​ / 이형기  (0) 2023.11.03
뻥의 나라에서 / 우대식  (1) 2023.11.01
유혹 / 송영숙  (1) 2023.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