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과(落果) / 정호승
내가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햇빛에 대하여
바람에 대하여
또는 인간의 눈빛에 대하여
내가 지상에 떨어진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내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그동안의 모든 기다림에 대하여
견딜 수 없었던
폭풍우의 폭력에 대하여
내가 책임을 다한다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책임을 지는 것이므로
내가 하늘에서 땅으로 툭 떨어짐으로써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출처: 정호승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 창비, 2022.
*약력: 195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 경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 졸업.
“내가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내가 하늘에서 땅으로 툭 떨어짐으로써 /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 두 구절만으로도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가 돋보이는 시이다.
죽음의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사유하는 것,
다시 말해 죽는 법을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 시적 윤리라는 생각이 드는 건 무얼까.
- 믈헐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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