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세상/출석부

낙과(落果) / 정호승

믈헐다 2023. 11. 4. 23:36

낙과(落果) / 정호승

 

내가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햇빛에 대하여

바람에 대하여

또는 인간의 눈빛에 대하여

 

내가 지상에 떨어진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내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그동안의 모든 기다림에 대하여

견딜 수 없었던

폭풍우의 폭력에 대하여

 

내가 책임을 다한다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책임을 지는 것이므로

내가 하늘에서 땅으로 툭 떨어짐으로써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출처: 정호승 시집 슬픔이 택배로 왔다, 창비, 2022.

*약력: 195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 경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 졸업.

 

 

“내가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내가 하늘에서 땅으로 툭 떨어짐으로써 /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 두 구절만으로도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가 돋보이는 시이다.

죽음의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사유하는 것,

다시 말해 죽는 법을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 시적 윤리라는 생각이 드는 건 무얼까.

- 믈헐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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