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선물 / 최서림
서리 맞고도 매달려 있는 홍시는
까치에게 줄 선물이다
내 유일한 사랑만큼이나 붉은
마당귀 아가위나무 열매 역시
어치에게 거저 주는 선물이다
갈매마을에서 세 들어 사는
땅콩만큼 작은 내겐
초겨울 저녁 하늘만 한 꿈이 있다
때죽나무 가지 끝에 걸린 감빛 노을을
엽서로 오려 부쳐주고 싶다
돈으로는 살 수도 없는
차이콥스키 협주곡처럼 낮게 깔린 안개,
둘레길에 수북이 쌓인 떡갈나무 잎은
타워팰리스에 사는 친구에게 한 박스 보낼 참이다
앞산의 갈대, 계곡물의 송사리, 이끼 낀 바위, 구절초와 감국
모두 값없이 받아 보내줄 게 너무 많다
하늘과 산과 들판은
줄 게 많은 나를 가장 사랑한다
*출처: 최서림 시집 『사람의 향기』, 시와에세이, 2019.
*약력: 1956년 경북 청도 출생, 서울대학교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시인이 줄 선물이야 어디 자연에서 생성된 것뿐이랴.
시를 쓴다는 것은 자연의 선물처럼 모든 이들에게 다 나누어 준다는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만인에게 행복을 안겨 주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자가 아닐까.
“하늘과 산과 들판은 / 줄 게 많은 나를 가장 사랑한다”니 말이다.
서울 강남의 상류층이 모여 사는 일명 귀족타운이라는 ‘타워팰리스’에 사는 친구에게는
둘레길에 수북이 쌓인 떡갈나무 잎을 한 박스 보낼 참이라니 의미심장한 말이다.
-믈헐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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