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 / 성윤석
당신을 바라보는 마음이, 내 옛 첫 마음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
눈물을 뚝 뚝 흘리며
복사꽃 그늘에서 바다로 걸어 내려간 일이거나
흐려진 바다 상회들의 거리를 배회하며
노가리 코다리 명태 동태 황태 북어로 따로 이름 불리며
뜯기거나, 얼리거나, 바람에 실리거니,
얼어 바닥에 내팽개쳐지는 일이거나,
가끔은 당신이 나를 바라보는 일만큼이나
횟집 수족관 유리에 비치는 것이었는데
당신이 아는 사랑을 나에게만 얘기해주길
나는 속앓이도 접고 바랐는데
오늘은 첫 마음 같은 이름 그대로 남고 싶어
불러보는 명태
*성윤석 시집 『멍게』, 문학과지성사, 2014.
*약력: 1966년 경남 창녕군 출생, 경남대학교 국문과 졸업.
명태는 싱싱한 생태, 얼린 동태, 말린 북어, 꾸덕꾸덕 노가리와 코다리 따위로
상태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각가지이다.
그러나 아무리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해도 명태는 명태이다.
사랑이건 뭐건 세상만사 시간이 지나면 변하기 마련이지만,
아무리 변해도 결코 변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정체성이다.
시인은 이를 사랑앓이로 노래한다.
“오늘은 첫 마음 같은 이름 그대로 남고 싶어 / 불러보는 명태”
-믈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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