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기도 / 이상국
커피점에 온 모녀가
커피가 나오자 기도를 한다
나는 보던 책을 내려놓았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기도는 길어지고
딸이 살그머니 눈을 떠 엄마를 살피고는
다시 눈을 감는다
하느님도 따뜻한 커피를 좋아하실 텐데……
*출처: 이상국 시집 『달은 아직 그 달이다』, 창비, 2016.
*약력: 1946년 강원도 양양 출생, 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강원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식사 때뿐만 아니라 다과에도 감사 기도를 올리는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커피를 앞에 두고 기도하는 것이 별스럽지는 않으나,
시에서처럼 기도가 길게 늘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은 일일 것이다.
시인은 이 광경을 목격하고서 보던 책을 내려놓았다.
"하느님도 따뜻한 커피를 좋아하실 텐데……"라며 식어가는 커피를 염려한다.
어쩌면 시인도 그 기도가 끝나기 전에 커피 잔을 쉽게 집어 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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