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말 / 하기정
여름의 반대말은 손바닥
뒤집으면 소나기가 쏟아졌다
무지개가 없어도 한바탕 꿈을 꾸고 나면
구름의 반대말은 나비
여덟 번째 태어나는 배추흰나비
애벌레였던 적을 모르고 배추의 맛을 몰라
영혼을 사각사각 갉아먹는 푸른 사과의 반쪽
너는 밤의 불빛을 나는 낮의 그림자를
내가 꽃을 향해 날개를 펼 때
지는 꽃 위에 날개를 접네
그러니까 당신의 반대말은 당신,
지구 끝까지 당신이라는
당신, 벽장문처럼 안으로만 잠겨 있는
*출처: 하기정 시집 『고양이와 걷자』, 걷는사람, 2023.
*약력: 1970년 전북 임실 출생(女), 우석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2010년 <영남일부 신춘문예> 당선.
"여름의 반대말은 손바닥"
겨울처럼 춥고 냉정하고 너와의 관계가 손바닥을 뒤집듯 쉬워야 하는데 어렵기 때문이다.
"구름의 반대말은 나비"
나비는 먹구름이 끼고 비가 오면 날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반대말은 당신,"
당신이라는 말에는 높임과 낮춤과 사랑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시어와 행간마다 하고 싶은 말을 벽장에 꼭꼭 숨겨 놓은 것만 같으니,
마치 시인의 반대말이 나인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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